영화

슬픈 사도세자(영화:사도)

newsun 2015. 10. 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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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사에서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라 하라.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 하였습니다. 영화 사도를 보고 왔습니다. 배우는 영조역을 맡은 송강호, 사도세자역에 유아인, 감독의 이준익 아들을 죽인왕 가장 불쌍한 왕자 조선왕조 뿐 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비극 입니다. 역사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 보겠습니다. 사도세자의 본명은 이선 입니다. 영조의 둘째 아들이고 첫째 아들 효장세자를 잃고 마흔살이 넘어서 낳은 귀한 아들 이었습니다. 이 늦둥이는 태어나자 마자 세자에 책봉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조선시대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릴때 부터 남다르게 총명함과 영특함을 보였고 다음 임금으로서 자질을 보여서 분명히 영조의 후계자 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사도가 성장하면서 점점 태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한장면: 자신에게 엄격했던 영조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왕 이였지만 사도는 기대와는 반대로 체격도 좋아지고 힘도 좋아지면서 학문보다는 무예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또한 그림 그리기 잡서를 많이 즐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터 아버지와 아들에 갈등이 시작 되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한중록에는 너무 일찍부터 세자를 책봉한 것부터 동궁전에서 자신이 경종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경종의 궁녀들을 사도세자 보모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이 보모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이간질 시키고 무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는불행에 시작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아버지와 갈등이 심화된것은 대리청정을 시작한 15살 부터 라고 합니다. 여기서 대리청정이란 세자가 왕의 업무를 대신 맡아보는 일 입니다. 대리청정을 했던 14년 기간동안 완전히 틀어진 것입니다.

영화의 한장면: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을 그리워하는 사도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영조는 신하들 앞에서 세자를 질책을 하였습니다. 영조는 항상 너무 엄격하게 대하셨기 때문에 사도는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위축되어서 제대로 말씀을 못드렸다고 합니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후부터 병이 생겨서 본성을 잃었고 임금이 매번 엄히 꾸짖으니 걱정스럽고 두려워 병이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습니다. 늘 꾸중만 하시는 아버지였기에 사도는 아버지을 만나려면 약을먹게 되었고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서는 정신병도 더 했다고 합니다. 한중록에서는 의관을 차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의대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옷을 입을때 살에 닿기만 해도 궁녀를 죽였고 내관은 쳐다 본다는 이유로 죽였다고 합니다. 천둥소리를 무서워하는 뇌벽증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경계증도 있었고 살인 자살시도등 정신분열 증세를 많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궁녀와 기생 여승과 관계를 맺으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들과 갈등이 있었던 영조에게는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미천한 무수리의 아들인 천민의 자식 이라는 것 배다른 형을 죽인 살인자라고 하는 것 노론이 만든 임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론이 자신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영조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더욱더 단련 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성격이 더날카로워 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여러가지 갈등으로 인해서 결국 사도는 뒤주에 갇혀서 아버지한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을 임오화변 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자식이 밉고 정신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파싸움으로 희생됬다는 말도 있지만... 사도세자는 그의 아들 정조에 의해서 추모되었으며 훗날 1899년 왕으로 추존 되었습니다. 영화속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배우들이 너무도 감정연기를 잘 하였고 아버지 영조의 사랑과 한번이라도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을 받고 싶었던 사도의 아픔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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